- 이탈리아 전선
https://www.youtube.com/watch?v=dvF1J_JDfAU
- 베네치아의 영광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중세시대가 도래할 때 등장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서유럽의 강국인 프랑크 왕국과 동유럽의 강국인 비잔티움 제국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며 성장했습니다. 독자적인 공화정을 실시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비잔티움 제국에게 공화국의 지도자를 허락받으며 비잔티움 제국의 특혜 하에 지중해의 강자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십자군 전쟁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쇠락하자 베네치아 공화국은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후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을 점령하며 전성기 가도를 달렸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베네치아 공화국은 아드리아 해와 지중해 동부를 수호하는 강력한 해군 보유 국가로 명성을 날렸고 오스만 제국의 발칸반도 침공에 베네치아 공화국은 강력한 해군으로 대항해 오스만 제국의 확장을 저지했습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호적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지배한 지중해 동부의 패권에 계속 도전장을 내밀었고 베네치아 공화국은 지중해를 두고 벌어진 패권전쟁이 계속됨에 따라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은 유럽을 지배하기 위해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고 가격 통제권을 쥐어 베네치아 공화국을 압박했습니다. 이에 향신료 무역의 최대 피해국인 서유럽 국가들이 직접 인도로 가는 대항해 시대가 열리게 되었고 아시아와 서유럽을 중계무역하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습니다. 쇠퇴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멸망했지만 이탈리아인들의 마음 속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전성기가 남아 있었고 이탈리아인들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를 수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습니다.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에 따라 이탈리아가 통일될 때 베네치아 공화국이 점령한 발칸반도 서부 지역은 이탈리아 왕국이 수복해야 하는 지역으로 각인되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는 그 지역들은 이탈리아 왕국의 이탈리아 이레덴타Italia irredenta였습니다.
- 최악의 전장 알프스 산맥
통일한 이탈리아 왕국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국경을 접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수복받아야 하는 이탈리아 이레덴타Italia irredenta는 알프스 산맥의 지역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알프스 산맥의 미수복지를 점령하러 병력을 보냈고 병사들은 험준한 산과 깊은 계곡, 위험한 절벽 위의 길을 따라 진군해야 했습니다. 이탈리아군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 오스트리아-헝가리군도 위험한 곳에서 전투를 치뤄야 했고 산사태와 낭떠러지 등 위험천만한 길을 지나며 보급을 해야 했습니다.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주 격전지는 이손초Isonzo 강 근처였지만 종종 알프스Alpi 산맥을 넘어 공세를 하기도 했습니다. 허나 공세를 위해서는 병사들과 야포 등 병기들을 수송해야 했고 이는 양측 군대가 직면한 또다른 문제였습니다.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벌어진 전쟁은 겨울이 다가오면 더 참혹해졌습니다. 언 땅은 미끄러질 수 있는 위험을 주었고 눈사태와 폭설은 병사들의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그럼에도 양측의 지휘관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병사들에게 이동을 강요했고 병사들은 야포와 포탄 등 보급까지 함께 이동시켜야 했습니다. 허나 흰눈이 내린 산악지대는 위험했고 양측 부대는 각종 방법으로 진군을 시도했고 많은 병사들이 시행착오에 희생되었습니다. 비정한 자연은 희생된 병사들을 눈으로 덮었고 병사들은 매순간 생존 전쟁을 치뤘습니다.
- 하얀 전쟁Guarra Bianca
이탈리아 왕국은 발칸반도 서부 지역을 수복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이손초Isonzo 강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왕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경은 대부분 알프스Alpi 산맥이었고 양측은 적이 알프스Alpi 산맥을 넘어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양측은 알프스Alpi 산맥에 요새를 짓고 병사들을 투입해 적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때때로 전투를 수행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양측의 산악부대는 눈덮인 알프스Alpi 산맥에 요새를 짓고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악부대끼리의 산악전이 산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다른 전선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전쟁으로 이탈리아 왕국은 비정규전인 이 전쟁을 하얀 전쟁Guerra Bianca라 불렀습니다.
- 산 너머 영광의 길
대전쟁은 혹독했지만 허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한 지역에는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살고 있었고 이탈리아인들 마음속에는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가 깊게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군은 험준한 산을 넘어 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압제에 고통받는 이탈리아 민족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탔고 연합국은 이탈리아 왕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에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이탈리아 미수복지를 탈환한다는 것은 위대한 이탈리아 민족국가를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 베네치아의 호수
중세 유럽 아드리아 해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바다로 유럽 사람들은 지중해를 로마의 호수로 불렀듯이 아드리아 해를 베네치아의 호수로 불렀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체성을 이어받은 이탈리아인들은 아드리아 해를 이탈리아의 호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군은 아드리아 해 항구에 정박하며 아드리아 해를 지배했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탈리아 왕국 해군은 아드리아 해에 해군력을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아드리아 해를 이탈리아 왕국 만이 점유하는 바다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민족주의에 고무된 사람들이 마주한 현실은 그들의 생각과 사뭇 달랐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크로아티아 지역을 합병하며 발칸반도 서부를 점령했고 아드리아 해의 동부에 위치했습니다. 독일제국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해군력으로 아드리아 해와 발칸반도를 지배하고자 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아드리아 해에 군항을 설치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을 양성했습니다. 그래서 아드리아 해는 이탈리아 왕국 해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이 양존하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삼국동맹의 일원으로 같은 삼국동맹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과 아드리아 해를 공유했지만 이탈리아 왕국은 이탈리아 통일전쟁을 방해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숙적으로 생각했고 숙적과 아드리아 해를 공유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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