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내전
1917년 2월 혁명으로 등장한 러시아 공화국은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10월 혁명으로 러시아 공화국이 붕괴되었고 러시아는 볼셰비키의 적군과 반볼셰비키의 백군이 전쟁을 벌이는 내전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수많은 러시아군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내전에 참전했고 캅카스 전선과 카자르 제국 북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러시아군은 점령한 오스만 제국 영토와 카자르 제국에서 후퇴했고 오스만군은 텅 빈 영토를 점령해가며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획득하고 카자르 제국의 서부 타브리즈تبریز로 진격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수세에 몰린 캅카스 전선에서 극적으로 부활했고 캅카스 전선은 한순간에 역전되었습니다.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오스만 제국 영토에 있던 아르메니아인과 아시리아인들은 진군하는 오스만 제국의 군대에게 학살을 당했고 몇몇은 카자르 제국으로 도망쳤지만 카자르 제국의 타브리즈تبریز에서 아시리아인 대학살이 일어났습니다.
- 영국령 인도제국의 던스터 부대
메소포타미아 전선과 카자르 제국에 병력을 배치한 인도원정군은 갑자기 살아난 오스만군에 당황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타브리즈تبریز를 점령하며 카자르 제국의 이란 헌병대를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영국령 인도제국은 우방인 러시아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공백이 된 러시아 전선에는 독일제국이 빠르게 침투했고 독일제국은 오스만 제국과 협력해 오스만 제국에 독일군을 보내고 남캅카스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민족 독립을 지원하며 해당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습니다. 독일제국의 목적은 바쿠Bakı를 점령해 전쟁에 사용할 석유를 확보해 서부전선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제국의 적인 대영제국과 영국령 인도제국은 서부전선, 즉 대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독일제국의 바쿠Bakı 점령을 어떻게든 저지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영국령 인도제국은 동맹군의 독일제국 뿐만 아니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역시 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전세계에 식민지를 보유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호칭을 받은 대영제국은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볼셰비키 세력들이 식민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대영제국의 식민지를 해체 독립시킬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특히 영국령 인도제국은 대영제국이 식민지 자본주의로 성장하며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게 한 식민지로 대영제국은 영국령 인도제국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영제국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세력의 확장을 막으려고 했고 영국령 인도제국에게 캅카스 지역과 카자르 제국 북부를 지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에 영국령 인도제국은 1917년 12월 리오넬 찰스 던스터빌 인도제국군 소장이 이끄는 던스터 부대를 신설했습니다. 리오넬 찰스 던스터빌 총사령관은 둔스터 부대 창설 직후 메소포타미아 전선으로 발령났고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에서 카자르 제국을 거쳐 바쿠Bakı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1918년 6월 오스만 제국은 바쿠Bakı를 점령하려다 실패했고 독일제국은 사카르트벨로에 독일군을 파병하며 바쿠Bakı로 점차 다가갔습니다. 이에 영국령 인도제국은 리오넬 찰스 던스터빌에게 빨리 바쿠Bakı를 점령하라고 명했습니다.
- 우르미아 교전
던스터 부대는 명을 받고 카자르 제국을 가로질러 바쿠Bakı로 향했습니다. 그 와중 던스터 부대는 카자르 제국의 우르미아ارومیه 호수에 주둔한 오스만군을 발견했고 리오넬 찰스 던스터빌은 우르미아ارومیه 주변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던 아시리아인 자위대에게 우르미아ارومیه 호수의 오스만군을 함께 격퇴하면 아시리아 자위대에게 자금과 무기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시리아 자위대는 약속을 받고 7월 8일 던스터 부대와 함께 우르미아ارومیه의 오스만군을 함께 격퇴했습니다. 그 후 던스터 부대는 바쿠Bakı로 향했고 7월 10일 바쿠Bakı에 도착했습니다. 허나 그 사이 오스만군이 아시리아군을 격퇴하고 우르미아ارومیه를 재점령했습니다. 아시리아 자위대는 해체되었고 우르미아ارومیه 주변에 있던 아시리아인들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피난 행렬에 가담했습니다. 그러나 오스만군과 도적들은 피난 행렬을 노렸고 던스터 부대는 8월 1일 기병대를 보내 피난민들을 보호하고 오스만군과 전투를 벌여 그들을 격퇴했습니다.
- 바쿠 호위
1918년 7월 10일 바쿠Bakı에 도착한 던스터 부대는 아르메니아군과 협력하며 바쿠Bakı를 지켰습니다. 1918년 7월 25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적군은 석유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바쿠Bakı로 진격했지만 던스터 부대는 장갑차 등 우수한 화력으로 적군의 침공을 막아냈습니다. 적의 공격을 막아낸 던스터 부대는 이후로도 바쿠Bakı를 수호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바쿠Bakı에 동맹군이 진격했고 던스터 부대와 동맹군의 전투는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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