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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종료/전쟁 종전 후 협정

[전쟁 종전 후 협정: 로잔 조약] 튀르키예 공화국의 탄생

by 롱카이. 2022. 4. 13.
  • 입헌군주국과 공화국
오스만 제국 마지막 술탄 메흐메트 6세
술탄 메흐메트 6세

튀르크 독립전쟁 당시 메흐메트 6세는 이스탄불İstanbul에 거주하며 오스만 제국 최후의 술탄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무스타파 케말이 이끄는 튀르크 독립군이 1922년 10월 이스탄불İstanbul에 입성했고 유럽 국가들은 튀르크의 독립을 인정하기 위해 새 조약을 체결하기로 했습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 이탈리아 왕국은 튀르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메흐메트 6세를 조약 회의에 초청했습니다. 더불어 앙카라Ankara에 본거지를 둔 무스타파 케말의 대국민 의회를 초청했습니다. 유럽 강대국들은 튀르크를 두개의 연립정부로 만들어 내부에서 분열하게 하려는 의도로 두 정부를 초청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스타파 케말은 술탄 메흐메트 6세의 통치를 부정했고 공화주의 세력을 이끌고 메흐메트 6세에 우호적인 입헌군주국 세력을 진압했습니다. 그 후 유럽 국가들에게 튀르크에는 앙카라Ankara 공화정부만이 있다고 주장했고 유럽 국가들은 별 수 없이 앙카라Ankara 대국민 의회를 초청했습니다.


  • 로잔 조약
터키 압둘 메지드 칼리프
압둘 메지드 칼리프

1922년 11월 대국민 의회는 술탄제를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에 따라 메흐메트 6세는 11월 17일 술탄 자리에서 사임해 이스탄불İstanbul의 대영제국 왕립 해군 전함을 타고 몰타Molta로 망명갔습니다. 무스타파 케말은 메흐메트 6세를 축출한 후 튀르크인들의 이슬람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술탄의 조카 압둘 메지드 2세를 칼리프로 임명했습니다. 무스타프 케말은 튀르크의 정치를 안정시킨 후 유럽 국가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약을 체결하러 이동했습니다.

로잔 조약 터키 독립
로잔 조약

1923년 7월 24일 튀르크 대표와 유럽 대표는 스위스 로잔Lausanne에서 로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튀르크는 로잔 조약으로 튀르키예 공화국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고 에게 해의 제도들과 키프로스 섬을 상실하는 대신 유럽 영토로 동트리카야를 획득했습니다. 더불어 아나톨리아 반도를 획득했고 쿠르디스탄을 완전 점령했습니다.


  • 튀르크의 부활
로잔 조약 영토
로잔 조약

유럽 국가들은 대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을 완전히 분할하며 새 식민지를 창출하려고 했지만 튀르크 독립전쟁과 로잔 조약으로 그 꿈을 날려버렸습니다. 튀르크 독립전쟁과 로잔 조약으로 아나톨리아 반도 전체에 튀르크의 민족국가 단 한 국가만이 건립되었고 튀르키예 공화국은 세브르 조약의 오스만 제국보다 더 거대한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더불어 튀르키예 공화국은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탈환해 다시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관문을 통제하는 국가가 되었고 그 전략적 위치를 잘 활용하며 외교전선에서 내밀 수 있는 정치적 카드를 보유할 수 있었습니다.


  • 그리스-튀르크 인구교환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
노란색: 그리스인들이 주로 살던 곳

로잔 조약으로 튀르키예 공화국이 선포되자 튀르크 민족 외 민족들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 중 그리스-튀르크 전쟁으로 치열하게 싸운 그리스인들은 튀르크의 보복 대상이 되어 신변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나톨리아 서부에 주로 살던 그리스인들은 그리스-튀르크 전쟁 말기 튀르크 독립군들과 민병대에게 집중적으로 학살당했고 튀르크인들은 그리스인들을 동방 정교회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했고 동방 정교회의 모습을 띄는 사람들을 골라 학살했습니다. 그러나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정교회를 믿는 신자들은 너무도 많았고 튀르크 정부는 그리스인들을 그리스 왕국으로 추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스 왕국 역시 맞불로 그리스 왕국의 무슬림들을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추방하기로 했고 양국은 이교도를 서로의 국가로 추방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종교를 기준으로 민족을 나누어 추방했고 추방당한 사람들은 이주하는 곳의 언어를 몰라 이주한 후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왕국은 약 50만명의 무슬림을 내쫒고 약 150만명의 정교도인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인구과다로 사회적 혼란이 생겼고 그리스 왕국은 난민을 두고 또다시 분열되었습니다. 튀르키예 공화국은 이어 아나톨리아 반도의 아르메니아인들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으로 추방했습니다.


  • 쿠르드의 비애
1920년 제안된 쿠르디스탄 자치령
1920년 제안된 쿠르디스탄.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튀르키예 공화국에 남은 민족은 쿠르드 민족이었고 로잔 조약으로 한순간에 자치권을 잃은 쿠르드 민족은 망명을 갈 국가가 없었습니다. 국제 연맹은 로잔 조약 전 쿠르드 민족의 영토를 고심했고 영국령 이라크는 쿠르드 민족의 지도자를 만나 쿠르드 영토에 대해 논의했지만 국제 연맹은 쿠르드 민족 영토 확정을 포기했고 그 상태로 로잔 조약이 체결되 쿠르드 민족은 영토없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쿠르드 민족은 튀르크 민족의 눈치를 보며 영국령 이라크와 카자르 제국으로도 이주해 살게 되었습니다. 쿠르드 민족은 튀르키예 공화국, 영국령 이라크, 카자르 제국에 널리 퍼지며 살게 되었고 이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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