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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종료/전쟁 종전 후 협정

[전쟁 종전 후 협정: 베르사유 회담-아프리카 분할] 승전국의 아프리카 합병

by 롱카이. 2022. 4. 28.
  • 독일제국의 미틀아프리카 계획

1917년 독일제국이 제안한 미틀아프리카
1917년 독일제국이 제안한 미틀아프리카

1917년 유럽전구의 독일제국은 승전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양면전을 치룬 독일제국은 1916년 베르됭 공세의 실패로 위기를 겪었지만 연합국 역시 솜 전투, 이손초 전투, 브루실로프 공세, 비토라 공세에 실패하며 많은 병력을 소모해버렸습니다. 더불어 1917년 무제한 잠수함 작전 재개로 연합국의 수장인 대영제국은 고립으로 국가 존폐의 위기에 놓였고 러시아 제국은 붕고되고 정치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 역시 니벨 공세의 실패로 병사들이 불복종하며 봉기를 일으켰고 이탈리아 왕국은 카포레토 전투의 참패로 왕정이 흔들렸습니다. 독일제국은 미군이 참전하기 전에 프랑스 제3공화국의 항복을 받아내면 승전이 있다고 판단했고 아프리카 분할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했습니다. 독일제국은 벨기에 왕국의 벨기에령 콩고를 합병하고 포르투갈령 앙골라와 모잠비크, 프랑스령 식민지 일부를 합병해 독일령 아프리카 식민지를 하나로 만드는 미틀아프리카Mittelafrika를 구상하고 대영제국에게 계획안을 전달했습니다.

1918년 수정된 미틀아프리카 지도
1918년 수정된 미틀아프리카

대영제국은 독일제국의 미틀아프리카Mittelafrika 계획안에 당연히 반대했지만 독일제국의 미틀아프리카Mittelafrika 실현을 두려워했습니다. 1918년 1월 독일제국은 루덴도르프 공세를 시작하면서 미틀아프리카Mittelafrika를 수정했습니다. 수정한 미틀아프리카Mittelafrika는 프랑스령 적도를 포함하는 것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중앙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제국의 미틀아프리카Mittelafrika 계획은 1918년 6월 미국원정군이 서부전선에 도착해 독일군을 몰아내면서 백지로 돌아갔습니다.


  • 승전국의 아프리카 분할

독일령 아프리카 식민지
독일령 아프리카 식민지

독일제국의 뒤를 이어 탄생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1918년 11월 11일 콩피에뉴 휴전으로 연합국에게 항복한 후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제국의 식민지를 모두 포기할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그 조약에 서명했고 이로서 바이마르 공화국은 4개의 아프리카 식민지를 상실했습니다. 남은 것은 빈 아프리카 식민지를 누가 합병하는 가였습니다. 승전국들은 독일령 아프리카 식민지의 주인 자리를 놓고 갈등을 벌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

우드로 윌슨 미합중국 대통령의 염원에 따라 1920년 1월 10일 설립된 국제연맹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구 오스만 제국의 영토, 구 독일제국의 아프리카-태평양 식민지 분할을 해결하기 위해 1922년 7월 22일 위임통치령이라는 개념을 발표했습니다. 국제연맹은 위임통치령에 따라 승전국의 패전국 분할을 지도했고 구 독일령 아프리카 식민지도 위임통치령에 따라 분할되었습니다.


  • 토고란트 분할

독일령 토고란트 분할
초록: 영국령 토골랜드 위임통치령 / 분홍: 프랑스령 토골랑 위임통치령

1914년 8월 27일 연합군은 토고란트를 점령했고 1916년 12월 27일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토고란트를 반으로 나누어 분할통치했습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신생독립국으로 탄생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은 독일령 토고란트를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아프리카 식민지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대영제국 정부와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는 이를 묵살했습니다. 이후 대영제국 정부와 프랑스 제3공화국 정부는 토고란트 분할을 두고 갈등을 벌였고 국제연맹은 독일령 토고란트를 영국령 토골랜드 위임통치령과 프랑스령 토골랑 위임통치령으로 분할했습니다.


  • 카메룬 분할

독일령 카메룬 분할
카메룬 분할

1916년 7월 20일 독일령 카메룬을 점령한 영국령 나이지리아와 프랑스령 적도는 카메룬을 분할 통치했고 1919년 베르사유 회담으로 독일령 카메룬의 서부와 남부를 프랑스령 차드, 프랑스령 중앙아프리카, 프랑스령 콩고, 프랑스령 가봉의 영토로 합병했습니다.

카메룬 위임통치령
카메룬 위임통치령(빨강: 영국령, 파랑: 프랑스령)

이후 국제연맹의 위임통치령에 따라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카메룬을 분할했습니다. 대영제국은 카메룬을 영국령 북카메룬 위임통치령, 영국령 남카메룬 위임통치령으로 나누었고 프랑스 제3공화국은 카메룬 중앙 부분을 프랑스령 카메룬 위임통치령으로 지정했습니다.


  • 남서아프리카 위임통치령

남아프리카 연방 남서아프리카 위임통치령
남아프리카 연방(붉은색)과 남서아프리카 위임통치령(주황색)

남아프리카 연방은 1915년 7월 9일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를 점령했기에 승전국들은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회담에서 남아프리카 연방의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점령을 인정했습니다. 국제연맹은 남서아프리카를 남아프리카 연방의 위임통치령으로 지정했고 남아프리카 연방은 이후 남서아프리카 위임통치령에 아파르트헤이트 등 남아프리카 연방의 정책을 적용하며 통치했습니다.


  • 동아프리카 분할

르완다-부른디 위임통치령
연녹색: 벨기에령 콩고 / 진녹색: 벨기에령 르완다-부룬디 위임통치령

독일령 동아프리카는 영국령 식민지군과 벨기에령 콩고군이 점령했기 때문에 국제연맹은 벨기에 왕국에게 르완다-부룬디 보호국을 르완다-부룬디 위임통치령으로 합병하는 것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로서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에서 항전한 벨기에 왕국은 그 대가로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르완다-부룬디 보호국을 받았습니다.

영국령 탕가니카 위임통치령
영국령 탕가니카 위임통치령

또다른 연합국인 대영제국은 1922년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탕가니카를 영국령 탕가니카 위임통치령으로 복속시켰고 영국령 동아프리카와 동일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후 1927년 대영제국은 영국령 탕가니카 위임통치령을 영국령 우간다 보호국과 영국령 동아프리카 보호국과 관세동맹을 맺게 해 영국령 동아프리카에 큰 경제 블록을 설정했습니다.


  • 변하지 않은 아프리카

1920년 이후 아프리카 지도
1920년 이후의 아프리카 지도

국제연맹은 위임통치령으로 독일령 아프리카 식민지를 승전국에게 분할했습니다. 국제연맹은 위임통치령이라는 이름으로 지배권을 주었지만 위임통치령은 식민지배와 다를 바 없었고 승전국인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벨기에 왕국은 아프리카 식민지 영토를 확장하는 셈이 되었습니다. 승전국들은 아프리카 대륙에 민족주의 개념을 적용하지 않았고 아프리카 대륙에는 1922년 독립한 이집트 술탄국, 1847년 미합중국의 지원으로 독립한 후 독립상태를 유지한 라이베리아 공화국, 스스로를 지킨 에티오피아 제국 외에는 모두 식민지였습니다. 때문에 아프리카 대륙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여전히 제국주의가 적용되었고 아프리카 독립의 길은 여전히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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