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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구/서부전선

[서부전선: 제1차 마른강 전투] 마른강의 기적

by 롱카이. 2022. 1. 20.
  • 길어진 독일군 보급선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독일군 진격 사진
파리로 진군하는 독일군

독일군은 벨기에에서 연합군을 물리치고 프랑스로 쾌속 진격했습니다. 연합군은 벨기에에서 대패하고 파리Paris 부근으로 후퇴해 독일군은 벨기에-프랑스 국경에서 파리Paris까지 그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연합군은 후퇴하는 와중 파리Paris로 후퇴하면서 철도선과 도로 등 모든 교통로를 파괴하고 다리를 파괴해 독일군이 빠르게 진격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특히 연합군은 벨기에-프랑스 국경에서 파리에 이르는 모든 철도선을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했습니다. 교통로의 파괴는 진군하는 독일군 일선부대에게도 장애물이었지만 후방 보급부대에게는 매우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 철도
독일군 철도

일선부대에게 식량과 무기를 보급해야 하는 독일군 보급부대는 철도를 이용한 빠른 수송에 의존했습니다. 철도로 보급을 하면 적은 시간의 대량의 물자를 보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철도가 없으면 보급이 끊긴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합군은 프랑스 영토에서 모든 철도선을 파괴했습니다. 때문에 독일군 보급부대는 철도를 타고 벨기에-프랑스 국경지대까지 진격한 뒤 철도에서 내려 프랑스에 있는 일선부대까지 마차와 보병으로 보급해야 했습니다. 마차와 보병으로 수송하는 것은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일이었습니다. 마차와 보병으로 운송할 수 있는 물자의 양은 철도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작은데다 속도도 느리고 말과 사람은 생명체이기에 휴식이 필요해 중간에 쉬며 갔습니다. 때문에 프랑스에서 독일군 보급품은 너무 늦게 공급되었고 독일군들은 식량과 총알이 부족한 상태에서 전투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 슐리펜 계획 수정

제1차 세계대전 슐리펜 계획 이론 지도
슐리펜 계획도

독일제국의 프랑스 제3공화국 침공 계획인 슐리펜 계획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이었습니다. 우익의 독일군 제1군과 제2군은 벨기에에서 출발해 빙 둘러 프랑스 파리Paris 후방으로 가 파리Paris를 포위해야 했습니다. 거기에 헬무트 요하네스 폰 몰트케 독일군 총참모장은 제1군과 제2군에게 파리 후방까지 가는데 40일 이내로 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벨기에 플란데런Flandre에서 보병 걸음으로 파리 후방까지 40일 안에 도착하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요구였습니다. 병사들은 어떻게든 슐리펜 계획에 맞추기 위해 하루 40km 강행군을 했지만 무거운 군장을 메고 매일 40km를 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거기에 슐리펜 계획을 충실히 따르면 보급선도 너무 길어져 파리Paris에 도착하기도 전에 먹을 것이 떨어져 굶을 판이었습니다. 독일 제1군은 경로가 가장 긴 부대로 위의 문제에 가장 심각하게 직면한 부대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슐리펜 계획 실제 경로
독일군 실제 진격로

그래서 독일 제1군의 알렉산데르 폰 클루크 야전사령관은 제1군의 이동경로를 수정했습니다. 그는 제1군을 파리Paris를 우회하는 것이 아닌 파리Paris 정면으로 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제2군 역시 중간에 경로를 바꿔 이동했고 독일 제1군과 제2군은 파리Paris를 포위하지 않고 마른 강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제1군과 제2군은 마른 강 부근에서 만났습니다. 독일군 우익부대가 경로를 바꿨기 때문에 독일군 제1군과 제2군을 상대하기 위해 독일군 예상경로에 진을 친 프랑스군은 독일군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마른 전투 지도
빨간선(독일군). 독일 제1군과 제2군 사이에 큰 공백이 생겼다.

프랑스군은 뒤늦게 독일 우익부대의 이동경로가 변경된 사실을 알고 바로 독일 제1군 후방을 치기 위해 진격했습니다. 독일 제1군은 프랑스군이 측면을 공격하는 것에 놀라 진격 방향을 다시 틀어 프랑스군과 정면대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독일 제1군이 경로를 바꾸자 독일 제1군과 제2군 사이에 틈이 생겼습니다.

 

 

 

  • 파리 택시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마른전투 프랑스군의 항전
마른 강 방어선의 프랑스군

한편 조제프 조프르 프랑스 총참모장은 후퇴하는 연합군에게 후퇴를 중단하고 공세를 명령했습니다. 이에 연합군은 바로 공세 조치를 취했고 독일군이 마른 강 부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른 강에서 독일군을 격퇴하려고 했습니다. 프랑스군에게 마른 강은 최후의 방어선으로 마른 강에서 독일군을 막지 못한다면 파리Paris 함락을 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군은 마른 강으로 병력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허나 프랑스군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른 강에 배치된 프랑스군 병력의 수가 적어 독일군을 막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설사 마른 강에 배치된 프랑스군이 선전하며 독일군을 잘 막더라도 압도적인 병력의 독일군이 밀고 들어가면 마른 강 방어선은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군은 마른 강 방어선에 늦기 전에 많은 병력을 보내야 했습니다. 허나 대량의 병력을 빠르게 이동시킬 방안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마른전투 프랑스 파리 택시
파리 택시

프랑스군은 후퇴하며 철도선을 모두 파괴했기 때문에 파리Paris에서 마른 강으로 갈 수 있는 기차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병력을 진군시키기에는 시간에 촉박했습니다. 모두들 프랑스군 병력 수송 문제로 골치를 썩힐 때 한 프랑스군 장교가 택시로 병력을 수송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한 장교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모두들 동의했고 프랑스 군부는 바로 파리 택시기사들과 협상에 나섰습니다. 파리 택시 기사들도 국가를 위한 일에 순순히 나섰으며 프랑스 군부와 파리 택시기사 대표는 금액 협상을 순조롭게 마친 뒤 파리 시내에 택시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파리 시내의 택시들은 한자리에 모였고 파리Paris에 있는 프랑스군 병력들을 태워 마른 강으로 이동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마른 전투 파리 택시 행렬
파리 택시 행렬

택시 동원령이 떨어진 그날 밤 프랑스 파리Paris에 600여대의 택시들이 모였고 택시들은 6000여명의 병력들과 물자들을 태워 밤사이에 파리Paris에서 마른 강 전장으로 운행했습니다. 파리 택시들은 파리Paris와 마른 강을 오가며 한밤 중에 6000명의 병력들을 모두 수송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6000명의 프랑스군 병력들이 충원된 모습을 본 독일군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독일군은 상식적이지 않은 결과에 매우 당황하며 상부에 믿을 수 없는 일을 보고했습니다.

 

 

 

  • 우연과 기적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마른전투 프랑스군
돌격하는 프랑스군

파리 택시는 첫날 이후로도 계속 운행하며 수많은 프랑스군 병력을 전장으로 끊임없이 수송했습니다. 프랑스군은 하루마다 수천명 이상의 병력들이 투입되었습니다. 결국 독일군은 수비적 자세로 일관하며 프랑스군을 유인 공격해 섬멸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군은 독일군보다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해 독일군을 프랑스 영토에서 몰아내기 위해 돌격전을 벌였습니다. 1914년 9월 6일 프랑스군은 독일군 참호를 공격하며 적극적으로 공격했고 독일군은 참호 속에 숨으며 기관총 공격으로 돌격해오는 프랑스군을 격퇴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많은 병력을 믿고 계속 공격하며 독일군을 압박했습니다. 그러는 와중 독일군과 프랑스군 그 누구도 독일군 제1군과 제2군 사이의 빈틈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마른전투 영국원정군의 진입 지도
독일군 프랑스군의 위치와 우연히 빈틈 안으로 들어간 영국원정군

그러던 와중 룩셈부르크 독일군 참모 본부에서 전선 시찰을 나가 독일군 정보 참모 헨츄 중령은 독일군 제1군과 제2군 사이의 빈 공간을 발견하고 놀라 독일군 제1군과 제2군 야전사령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후퇴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만일 연합군이 독일 제1군과 제2군 사이를 파고 들면 독일군은 후방이 뚫려 전방과 후방에서 동시공격을 받고 전멸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독일 제1군과 제2군 야전사령관은 후퇴를 결심했습니다. 야전사령관은 때마침 독일군 정찰기에서 독일 제1군과 제2군 사이에 연합군이 진격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고 후방이 뚫리기 전 후퇴해서 재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후퇴했습니다. 하지만 정찰기가 말한 연합군은 사실 전쟁터에서 길을 잃고 헤맨 영국원정군의 소수 병력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독일 제1군과 제2군 사이에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1914년 9월 9일 영국원정군이 우연히 틈 사이로 들어가면서 독일군은 후퇴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마른전투 이후 후퇴하는 독일군 지도
점선(마른 강 전투 당시 전선)과 실선(독일군 후퇴 이후 생긴 전선)

이로서 연합군은 독일군을 마른 강 방어선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연합군은 우연한 행위로 독일군을 파리Paris 근교에서 밀어냈습니다. 그래서 연합군은 이 우연을 가리켜 마른강의 기적이라 불렀습니다. 독일군은 빠르게 후퇴했고 연합군은 독일군 뒤를 쫒았습니다. 그러면서 연합군은 프랑스 북부의 일부 지역을 수복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질 생각이 없던 독일군은 후퇴하면서 모든 교통로와 다리를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엔Aisne 강에서 후퇴를 멈추고 연합군과 상대할 준비를 했습니다.

 

 

 

  • 책임을 물고 사임한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총참모장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총참모장

제1차 마른 강 전투에서 후퇴한 독일군은 프랑스 파리Paris를 순식간에 점령해 전쟁을 단기간에 끝낸다는 계획을 이루는데 실패했습니다. 이는 독일군의 치명적인 실수로 독일제국이 프랑스와 러시아를 모두 상대하는 양면전쟁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독일제국 장성들이 제1차 마른 강 전투의 패배를 복기한 결과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총참모장이 독일군 제1군과 제2군의 병력을 일부 빼 동부전선으로 보내 제1군과 제2군의 군사력이 약해져 벌어진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작 동부전선에서는 독일 제1군과 제2군이 도착하기 전 동부전선의 독일군이 러시아군을 격퇴했습니다. 이에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는 서부전선의 실패를 만든 장본인으로 책임을 물고 독일군 총참모장 자리에서 사퇴했습니다. 독일 제1군과 제2군 야전 사령관도 책임을 물고 사임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 에리히 폰 팔켄하인 총참모장
에리히 폰 팔켄하인 총참모장

그리고 카이저 빌헬름 2세는 개인적으로 총애하던 에리히 폰 팔켄하인을 독일군 총참모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에리히 폰 팔켄하인은 프랑스를 빨리 굴복시켜야 한다는 중대한 과제를 안은 체 독일군 새 총참모장 자리에 등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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