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한번 공세에 나서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 중일 때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 왕국은 중립을 지키다 런던 밀약으로 연합군에 가담했습니다. 1915년 5월 23일 이탈리아 왕국은 고토 회복을 위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방면으로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침공에 난항을 겪던 이탈리아 왕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에 협공을 제안했습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제안을 받아들여 이탈리아 왕국과 동시에 동맹국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군과 영국원정군 연합군은 다시 한번 독일 참호선 돌출부에 대한 공세를 준비했습니다. 연합군은 조프르 장군이 전에 실시했던 독일군 돌출부 공격을 다시 한번 시도했습니다. 프랑스군은 철도와 도로가 미비했던 상파뉴Champagne 부근에 철도를 건설하고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는 1915년 9월 25일 각자 동시 공격을 약속했습니다. 프랑스는 서부전선의 아르투아Artois와 상파뉴Champagne을, 영국은 서부전선의 루스Loos를,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전선의 이손초Isonzo를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9월 보름이 넘었습니다.
- 제3차 아르투아Artois 전투
프랑스군은 실패한 제2차 아르투아Artois 전투를 분석하고 세번째 공격에 나섰습니다. 프랑스군의 목적은 아르투아Artois에 있는 독일군을 누와용Noyon으로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9월 21일 프랑스군은 아르투아Artois에 포격을 가했습니다. 프랑스군은 4일간 포격을 해 독일군 참호선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9월 25일 프랑스군은 쑤쎄Souchez로 돌격했습니다. 프랑스군은 독일군 최전방 참호 점령에 성공했습니다.
이 기세를 몰아 독일군 두번째 참호선(제2 방어선)으로 돌격했으나 독일군은 증원을 하며 프랑스군을 막어섰습니다. 전쟁터는 어느덧 11월로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11월이 되도록 독일군 두번째 참호선 돌파에 실패했습니다. 때문에 11울 4일 프랑스군은 독일군 두번째 라인 참호를 점령하지 못하고 공격을 중단했습니다.
- 루스Loos 전투
프랑스군이 아르투아Artois를 공격하자 영국원정군도 루스Loos 공격에 나섰습니다. 영국원정군은 루스Loos 전투에서 독가스를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개발자들은 전장의 바람 방향이 영국원정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니 독가스를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영국원정군 사령관은 독가스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개발자들의 경고대로 몇몇 독가스는 영국군 참호로 날아가 영국군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원정군은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영국 왕립 비행단은 독일군 참호 위로 날아 목표 위치를 알려줬고 영국원정군은 목표물에 포격 공격을 해 방어선을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그 후 철조망과 방어선이 무너졌다고 생각한 영국원정군 사령관은 병사들에게 돌격을 명했습니다.
그러나 철조망은 굳건했고 영국원정군은 대부분의 독일군 최전선 방어선에서 철조망을 제거하지 못하고 후퇴했습니다. 그 중 한 부대가 독일군의 약한 참호를 공략해 최전방 참호선 점령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은 제2 방어선으로 물러나 저항했고 영국원정군은 예비대를 빨리 투입하지 못해 점령했던 참호선을 잃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참호선을 다시 점령하기 위해 공격했지만 10월 8일 독일군 제2 방어선 점령에 실패했습니다.
- 제2차 상파뉴Chanpagne 전투
1915년 9월 25일 프랑스군은 독일군 참호를 포격했습니다. 그 후 보병을 투입해 독일군 최전선 참호 여러 군데를 함락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포병과 보병 간에 신속한 통신이 이루어지지 않아 프랑스군 포병은 프랑스군 보병이 점령한 참호에 포격을 가해 아군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독일군은 제2차 방어선으로 후퇴했고 독일군 총참모장 팔켄하인의 명으로 독일군이 증원했습니다. 프랑스군과 독일군은 참호를 두고 뺏고 뺏기는 교전을 반복했고 9월 29일 프랑스군은 독일군 참호를 독일군에게 빼앗기고 후퇴했습니다. 그 후 11월까지 작은 교전을 치뤘지만 전선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 변함없는 참호선
연합군은 독일군 참호 돌출부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재시도했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독일군은 후방 참호로 후퇴한 뒤 다시 반격해 최전선 참호선을 되찾는 전술을 즐겨 사용하며 연합군을 참호에서 다시 밀어냈습니다. 연합군은 이 전투로 수많은 병력을 잃었습니다. 독일군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연합군은 너무 큰 피해를 입어서 이후 한동안 대공세를 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1915년 마지막 대규모 공세는 아무 변화도 없이 끝이 났습니다.
'유럽전구 > 서부전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부전선: 영국 병역법 재정] 징병제로 바꾼 영국 (0) | 2022.01.28 |
---|---|
[서부전선: 국지전 작전] 독가스와 땅굴로 참호를 넘어라 (0) | 2022.01.28 |
[서부전선: 항공전 1편] 포커의 징벌 (0) | 2022.01.27 |
[서부전선: 도심 폭격] 배이비 킬러 (0) | 2022.01.27 |
[서부전선:제2차 아르투아 전투 2편] 피의 능선 (0) | 2022.0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