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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구/서부전선

[서부전선: 영국 병역법 재정] 징병제로 바꾼 영국

by 롱카이. 2022. 1. 28.
  • 전쟁 초반 활약한 영국원정군

제1차 세계대전 초반 영국원정군
영국원정군

1914년 벨기에가 침공당하자 영국은 병력을 벨기에로 파병했습니다. 이때 영국 정부는 남아프리카 보어 전쟁에서 활약한 영국원정군(British Expeditional Force: BEF)를 벨기에로 보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모병제로 선발된 병력으로 영국원정군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직업군인이었습니다. 직업군인인 영국원정군은 첫 전투 때부터 훌륭히 전투를 수행해왔습니다. 영국원정군은 징병제로 일반인을 뽑아 결성한 프랑스군보다 더 좋은 전과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도 만만치 않았고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영국원정군 병력 피해가 커졌습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활동 가능한 영국원정군 병력 수는 줄어들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영국원정군 병력 피해를 줄이기 위해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제국 등에서 병력을 모아 영국원정군과 함께 싸우게 했지만 그럼에도 독일군의 강력한 공격에 영국원정군은 큰 병력 손실을 보았습니다. 결국 1915년 말 영국원정군 병력은 더이상 운영이 힘들정도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전쟁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징병제로 병력을 보충하기로 했습니다.


  • 1916년 병역법 통과와 징병제 실시

제1차 세계대전 후반 영국원정군의 진격
징병제로 전선에 투입된 영국원정군

1916년 1월 27일 영국 의회는 병역법Military Service Act을 제정했습니다. 그리고 2월 1일이 되자마자 법을 시행해 영국 본토에서 병사들을 차출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영국 본토의 연령대가 18세부터 41세까지인 남성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해 징병제를 실시했습니다. 단 가족이 있는 사람, 종교인 혹은 국가 중요 인재의 경우 면제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브리튼 섬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에서 징병제를 실시했고 아일랜드 독립운동으로 소란스러웠던 아일랜드는 병역 면제를 실시해 아일랜드인들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영국은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바꾸며 수많은 영국원정군 병력들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전 영국원정군과 달리 전문 훈련을 받은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1914년에 파견된 영국원정군보다 질적 열세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지휘부는 병력의 양도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영국은 수많은 영국원정군을 보충해 200만명의 병력을 서부전선으로 파병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전력이 대폭 증가되었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병력이 증가한 바람에 물자가 부족했습니다. 더불어 병사들은 신입으로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이런 상황은 영국원정군이 열약한 환경에 처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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