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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전쟁으로

[더 큰 전쟁으로: 오스트리아 내전] 오스트리아를 잠식한 전체주의

by 롱카이. 2022. 12. 7.
  •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과 민족주의 정당의 갈등
공화수호동맹
공화수호동맹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된 이후 생제르맹 조약으로 등장한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오스트리아에 최초의 공화국이 설립되었고 다양한 정당이 형성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Österreichs, 기독교사회당Christlichsoziale Partei, 위대한 게르만인 인민당Großdeutsche Volkspartei과 농민평의회Landbund 등 다양한 정당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은 연립정당을 구성해 정치혼란을 잠재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극우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 간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되었습니다. 둘의 갈등은 서로 총격을 벌이는 정도로까지 비화되었고 각 정당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준군사조직을 설립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은 공화수호동맹Republikanischer Schutzbund이라는 준군사조직을 결성했고 극우정당은 각자의 준군사조직을 결성했습니다. 그 중에는 독일-오스트리아 전선전사협회Frontkampfervereinigung Deutsch-Österreichs가 있었습니다.

7월 폭동
7월 폭동

폭력적인 성향을 띈 독일-오스트리아 전선전사협회Frontkampfervereinigung Deutsch-Österreichs는 1927년 1월 30일 오스트리아-헝가리 국경분쟁으로 뜨거웠던 부르겐란트Burgenland 주의 샤텐도르프Schattendorf에서 열린 공화수호동맹Republikanischer Schutzbund 모임을 무단공격했습니다. 독일-오스트리아 전선전사협회FDÖ는 샤덴도르프Schattendorf 철도역의 공화수호동맹원들을 공격했고 공격에 공화수호동맹원의 베테랑 병사와 8살 어린이가 총격에 사망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총파업을 기획해 대표 극우정당인 기독교사회당Christlichsoziale Partei을 압박하기로 했습니다. 1927년 7월 15일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의 지도 하에 빈Wien 시민들은 총파업을 시작했고 빈 대학교와 경찰서를 점령했습니다. 경찰들은 총파업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구타당했고 시위대는 신문사도 점령해 언론통제를 받는 신문들을 불태웠습니다. 시위대는 의회의사당까지 갔지만 경찰의 제지로 실패했고 정의궁전Justizpalast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시위대는 정의궁전Justizpalast의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가 서류를 불태웠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오스트리아 연방군Bundesheer이 출동했고 시위대를 체포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력 점령을 주도한 공화수호동맹원들도 대거 체포했습니다. 이 사태로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은 여론이 약화되었고 민중들의 여론은 기독교사회당CP으로 기울었습니다.


  • 조국전선Vaterländische Front의 등장
조국전선
조국전선

기독교사회당CP는 이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여당이 되었고 1932년 5월 10일 기독교사회당CP의 엥겔베르트 돌푸스는 빌헬름 미클라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 총리가 되었고 다른 우파 정당들과 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보국단Heimwehr을 결성하고 좌파 정당들을 탄압했습니다. 1933년 3월 15일 엥겔베르트 돌푸스 총리는 보국단Heimwehr를 앞세워 의회를 해산하고 2달 뒤 조국전선Vaterländische Front을 외치며 독재를 선포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 외부세력은 들어올 수 없다며 소련의 영향을 받는 오스트리아 공산당Kommunistische Partei Österreichs과 독일국이 심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을 탄압하며 보국단Heimwehr 휘하의 공포정치를 이끌었습니다.


  • 오스트리아 내전
오스트리아 내전 중 연방군의 공격
오스트리아 내전 중 연방군의 공격

엥겔베르트 돌푸스 총리 휘하의 조국전선Vaterländische Front은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국정을 장악했습니다. 그는 조국전선Vaterländische Front 체제를 지키기 위해 연방군Bundesheer, 보국단Heimwehr, 현병Gendarmerie을 장악했고 부활절돌격대Ostmärkische Sturmscharen라는 준군사조직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조국전선은 해당 병력으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세력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세력과 시민들은 극우단체의 폭력진압에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은 부활절돌격대OS에 대항해 공화수호동맹RS의 세를 키웠습니다. 1934년 2월 12일 조국전선Vaterländische Front은 린츠Linz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원을 찾아나서며 그들을 체포했습니다. 이에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과 공화수호동맹RS는 봉기를 일으키며 반발했고 조국전선Vaterländische Front은 병력을 투입해 이들을 무력진압했습니다. 이 소요사태는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전역으로 퍼졌고 오스트리아 내전으로 비화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연방군은 야포까지 동원해 공화수호동맹RS를 진압했고 패전이 거듭되자 사회민주당원들은 해외로 도피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내전은 1934년 2월 16일 종료되었습니다.


  • 오스트리아 연방의 탄생
오스트리아 연방
오스트리아 연방

오스트리아 내전에서 조국전선Vaterländische Front은 승리했고 모든 경쟁자를 제거한 조국전선Vaterländische Front은 오스트리아를 전체주의 국가로 만들 준비를 진행해나갔습니다. 엥겔베르크 돌푸스의 조국전선Vaterländische Front은 의회를 해산한 후 측근들을 다시 앉혔고 엥겔베르크 돌푸스 총리는 1934년 3월 1일 오스트리아 연방Bundesstaat Österreich을 선포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연방은 독일국과 이탈리아 왕국처럼 파시스트 전체주의 국가였고 아돌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연방이 독일국과 합쳐져 게르만 통일국가 건립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엥겔베르크 돌푸스는 오스트리아 민족주의를 외치며 오스트리아 게르만 민족주의 학문을 발전시키고 독일 게르만 민족주의와 다름을 인정받고자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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