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방에서 시작된 독일공격
6월 말 공세를 끝내고 베르됭 요새 점령을 준비하던 독일군에게 또다른 변수가 생겼습니다. 연합군이 독일을 양쪽에서 대대적으로 공격한 것었습니다. 동부전선의 러시아군은 6월 말 브루실로프 공세로 독일제국의 우방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을 멸망직전으로 만들어 독일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지원해야 했습니다.
또 서부전선에서는 1916년 7월 1일 솜 방면에서 영국원정군이 대규모 부대를 이끌고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해 전과는 차원이 다른 공세를 펼쳤습니다. 이에 독일군은 황급히 솜므 방면으로 병력을 파견해 솜므 참호선을 지켰습니다. 상당수의 독일군이 솜므 전선으로 파견가며 베르됭 요새 전선에 파견된 독일군 병력은 부족해졌습니다. 6월 말부터 상황은 독일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은 베르됭 요새 점령을 전면 중단하고 동부전선으로 병력을 보내 러시아군을 막고 서부전선에서 영국군의 공격을 막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에리히 폰 팔켄하인 독일군 총참모장은 베르됭 공세를 지휘한 슈미트 폰 크노벨스도르프 장군에게 방어전으로 전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 참혹한 요새쟁탈전
독일군은 공세를 중단하면서 수빌Souville 요새를 프랑스군에게 빼앗겼습니다. 공격에 정신이 팔린 독일군 슈미트 폰 크노벨스도르프 장군은 수빌Souville 요새를 다시 점령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7월 11일 수빌Souville 요새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프랑스군의 항전에 많은 병력을 잃었습니다. 무책임한 실책으로 귀중한 병력을 잃은 슈미트 폰 크노벨스도르프는 결국 이를 보다 못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태자가 그를 동부전선으로 전출시켰습니다.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낸 프랑스군 역시 로베르 니벨 장군의 명령 하에 공격에 나섰고 프랑스군과 독일군은 수많은 접전을 벌였습니다. 2달간 이어진 소규모 공격으로 수많은 요새들이 주인이 바뀌기를 반복했습니다. 특히 플뢰리-드벙-두오몽Flery-devant-Douaumont 요새와 티아몽Thiaumont 요새는 2달 동안 10번 넘게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 프랑스군의 마지막 공세
로베르 니벨 장군은 베르됭 방면 참호선을 전투 전 참호선으로 회복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프랑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니벨 장군은 샤를 망갱 사단장에게 공격권을 주며 기지 탈환을 명령했습니다. 1916년 10월 24일 샤를 망갱 사단장의 지휘로 프랑스군은 총공세를 실시했습니다. 프랑스군은 개량한 야포를 동원해 독일군이 했던 방식 그대로 야포 사격 직후 보병돌격 작전으로 두오몽Douaumont 요새를 탈환했습니다. 프랑스군은 계속 공세를 이어가며 11월 2일 보Vaux 요새를 탈환하고 다른 여러 요새들도 탈환했습니다. 프랑스군은 12월 15일 마지막 공세를 해 시체고지를 제외한 영토 회복에 성공했습니다. 1916년 연말 공세로 베르됭 요새 참호선은 1915년과 동일해졌습니다.
- 참혹하고 무의미한 소모전의 결말
베르됭 요새를 두고 벌인 독일군과 프랑스군의 소모전은 1916년 2월 21일 시작해서 1916년 12월 20일 종료되었습니다. 양측은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병사들을 끊임없이 밀어넣으며 소모했고 그 무식한 전술에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독일군은 베르됭 전투에서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며 프랑스군을 격멸해 대규모 피해를 보게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수많은 독일군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베르됭 요새는 끝내 점령해보지 못하고 전투 전 참호선으로 물러났습니다.
1916년 한 해 동안 벌어진 소모전에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독일군과 프랑스군 양측 지휘관은 소모전을 펼치며 병사들을 포탄 속으로 밀어넣었고 때문에 전장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독일군은 125만 병력 중 33만 6천명에서 43만 4천명의 병력을 잃었고 프랑스군은 114만 병력 중 37만 9천명의 병력을 이 소모전에서 잃었습니다. 독일군은 전투 후 교환비를 계산했는데 계산 결과 에리히 폰 팔켄하인이 이상적인 피해 비율이라고 생각했던 5:2 교환비를 아득히 넘은 5:4 교환비를 내며 수많은 병력들을 잃었습니다.
베르됭 전투를 기획하고 지휘했던 에리히 폰 팔켄하인 총참모장은 이 작전 실패와 수많은 독일군 병력들을 허무하게 소모한 책임을 물어 해임되고 베르됭 전투를 반대한 파울 폰 힌덴부르크 동부전선 사령관이 독일제국의 총참모장에 등극했습니다. 파울 폰 힌덴부르크와 함께 동부전선에서 공적을 세운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참모차장과 군수총감에 등극했습니다.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독일군 2인자였으나 총책임자 카이저 빌헬름 2세는 우유부단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독일군의 총 지휘를 맡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노령의 나이였기 때문에 에리히 루덴도르프가 실권을 쥐며 독일군을 지휘했습니다. 그는 전시경제를 명분으로 독일제국 경제를 쥐며 독일제국의 독재자로 등극했습니다.
조제프 조프르 프랑스 총참모장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독일군이 베르됭Verdun을 공격한다는 첩보를 끊임없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첩보를 무시하다가 베르됭Verdun을 잃을 뻔했습니다. 조제프 조프르 총참모장은 필리프 페탱 장군에게 빠르게 베르됭Verdun 실질지휘권을 넘겨 베르됭Verdun을 수호하는데 성공했지만 1914년부터 베르됭Verdun 전투까지 보여준 그의 몰상식한 태도에 프랑스 정부는 책임을 물어 1916년 12월 그를 총참모장 자리에서 해임시켰습니다. 그리고 베르됭Verdun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로베르 니벨을 프랑스 총참모장으로 임명했습니다. 로베르 니벨은 조제프 조프르의 자리를 이어받아 프랑스군을 총지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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