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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구/서부전선

[서부전선: 솜 전투 1편] 영국원정군의 대규모 공세

by 롱카이. 2022. 2. 1.
  • 새로 부임한 영국원정군 총사령관

제1차 세계대전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
더글러스 헤이그

1914년 영국은 존 프렌치 총사령관을 영국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서부전선의 지휘를 위임했습니다. 더글러스 헤이그는 영국원정군 총사령관 존 프렌치 휘하에서 영국원정군의 지휘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1915년 12월 19일 더글러스 헤이그는 새로운 영국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더글러스 헤이그는 서부전선을 반드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낼 것이라는 자부심에 차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적극적인 공세로 독일군의 참호선을 뚫고 서부전선을 승리로 이끌 것을 목표로 했고 그것을 위해 그의 열정을 바쳤습니다.


  • 연합군이 계획한 소모전

조제프 조프르와 더글러스 헤이그
조제프 조프르(좌)와 더글러스 헤이그(우)

1915년 가을 연합군이 실시한 독일제국군 참호선 돌출부 돌파작전이 실패하자 조제프 조프르 프랑스 총참모장은 독일군 병력을 약화시켜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모전을 유도해 독일군이 수많은 병력을 소모하게 만들 작전을 세웠습니다. 1915년 말 작전을 세운 조제프 조프르 총참모장은 더글러스 헤이그를 만났고 영국원정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헤이그는 작전에 동의했습니다. 1915년 12월 대영제국, 프랑스 제3공화국, 러시아 제국, 이탈리아 왕국 연합군은 샹티회의를 열어 1916년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동시공격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서부전선을 맡은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 군대는 1916년 8월 1일 솜 강 부근에서 독일군을 향해 총공세를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 베르됭 전투가 바꾼 계획

제1차 세계대전 베르됭 전투 프랑스군 보급
베르됭으로 이동하는 프랑스군

하지만 1916년 2월 21일 독일군이 먼저 베르됭Verdun을 공격했습니다. 독일군은 대규모 병력을 보내 베르됭 요새를 점령하려 했고 프랑스군은 베르됭을 절대 사수해야 했습니다. 독일군은 수많은 병력을 밀어넣으며 베르됭으로 진격했고 프랑스군은 솜 전역에 배치한 예비군까지 베르됭으로 모두 보내야 했습니다. 때문에 솜 전역에는 영국원정군만이 남았습니다. 거기에 조제프 조프르 프랑스 총참모장은 더글러스 헤이그 영국원정군 총사령관에게 독일군 병력의 분산을 위해 빨리 솜 강에서 공세를 시작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이에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7월 1일을 공세시작일로 변경했습니다.

1915년 공세를 계획할 때 공세의 주력은 프랑스군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은 무기를 대량동원해 공세에 나서고 영국원정군이 프랑스군을 보조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 병력 대다수가 빠지자 영국원정군이 공세를 주도해야 했습니다. 솜 공세는 영국원정군이 처음으로 주도한 대규모 공세였습니다. 얼핏보면 공세는 영국원정군에게 불리해보였습니다. 하지만 솜 전역에서 방어진을 펼치던 독일군도 좋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1916년 여름이 되자 베르됭 전투는 독일군과 프랑스군의 끝없는 소모전이 되었고 서부전선 각지에 있던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베르됭으로 모였습니다. 때문에 독일군 참호선을 지키는 독일군 병력 수는 줄어들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이를 기회라 보고 공격을 준비했습니다. 더글러스 헤이그 영국원정군 총사령관은 솜 공세의 목표를 독일군이 병력을 분산해 베르됭으로 병력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솜 전역에서 독일군을 소모시키며 독일군 병력을 고갈시키는 것으러 했습니다. 하지만 야심많은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이에 더해 독일군 방어선을 뚫어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솜 전투 계획도
솜 공세 계획도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1차 단계에서 독일군 제1 방어선을 뚫고 2차 단계에서 제2방어선과 제3방어선을 뚫어 예비군이 돌파구로 아라스Aras로 북진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더글러스 헤이그는 독일군 방어선이 3중으로 되어있음을 알았지만 독일군의 능력을 과소평가했고 무수히 많은 병력을 밀어넣으면 반드시 이긴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병사들을 동시 투입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작전일 1916년 7월 1일을 기다렸습니다.



  • 멧돼지 머리Boar’s head 점령전

제1차 세계대전 솜 전투 멧돼지 머리 고지
멧돼지 머리Boar's head 지역

영국원정군은 7월 1일 솜 공세를 시작하기 하루 전인 1916년 6월 30일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던 멧돼지 머리Boar’s head 지역을 먼저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멧돼지 머리Boar’s head는 리쉬부르-라부에Richebourg-l’Avoué 마을에 있는 지역으로 독일군 참호선의 돌출부였습니다. 영국원정군은 독일군의 돌출부를 공격해 독일군 병력이 솜 방어선으로 집결되는 것을 막으려했습니다.

1916년 6월 30일 영국군은 멧돼지 머리Boar’s head를 공격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사전포격으로 독일군 철조망을 자르고 진격했고 독일군은 기관총 사격으로 응전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기관총 공격에 많은 피해를 봤지만 독일군 제1방어선 돌파에 성공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이어 제2방어선을 공격했습니다. 제2방어선 점령전에서도 영국원정군은 독일군의 강한 기관총 공격에 큰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제2방어선 점령에 성공했습니다. 후방의 독일군은 반격을 시도했지만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습니다. 멧돼지 머리Boar’s head 점령작전은 하루만에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대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 영국원정군의 첫 공세

제1차 세계대전 솜 전투 영국원정군 포격
포격하는 영국원정군

1916년 6월 24일 영국원정군의 포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8일간 독일군 참호선을 포격했습니다. 영국원정군은 포격으로 독일군 참호 앞 철조망과 독일군 참호, 벙커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영국원정운은 특히 독일군 참호선 앞을 가로막는 철조망을 포격으로 완전히 파괴해 기병돌격의 큰 장애물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더글러스 헤이그는 영국군 참호 뒤에 영국원정군 기병부대까지 배치하며 영국원정군은 포격 후 돌격만 하면 된다고 확신했습니다. 1916년 7월 1일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8일간 이어진 포격으로 독일군 방어선이 완전히 붕괴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총공세 전 폭약 지뢰를 터트릴 것을 명령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솜 전투 폭약 지뢰
폭약 지뢰 폭파

영국원정군 공병대는 7월 1일 대공세를 시작하기 전 참호 아래 갱도를 파 독일군 참호까지 갱도를 팠고 갱도에 대량의 폭약 지뢰를 매설했습니다. 그리고 1916년 7월 1일 연합군 공세 10분 전 더글러스 헤이그의 명령에 따라 영국원정군 공병대는 폭약 지뢰를 터뜨렸고 독일군 방어진지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습니다. 그 폭발로 수많은 독일군이 일시에 사망했지만 곧 후방 예비군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솜 전투 탄약
영국원정군이 쓴 포탄 탄피 더미

하지만 더글러스 헤이그의 확신과 달리 독일군은 생각보다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첫번째로 더글러스 헤이그는 무작정 아무 야포나 동원했습니다. 그래서 야포의 사거리가 제각각으로 목표 명중률이 떨어졌습니다. 두번째로 영국원정군은 시설을 파괴하는데 용이한 중포, 고폭탄이 아닌 개활지에서 인마살상을 위해 만들어진 유산탄을 주로 사용해 참호 속에 있는 독일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습니다. 세번째로 솜 전역의 토양이 무른 탓에 포탄이 땅에 박힌 채 터지지 않았고 영국군 포탄 중 불량품이 많았습니다. 네번째로 독일군은 적의 포탄사격에 대비하는 훈련을 철지히 받았고 참호와 벙커를 깊게 파고 숨어 영국원정군의 포탄공격을 피했습니다. 이는 포격으로 독일군 방어선을 파괴한다는 영국원정군의 계획을 완전히 빗나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원정군은 적 방어선의 상황을 몰랐고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상황을 낙관했습니다. 이는 영국원정군에게 끔찍한 대가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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