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의 앙크레Ancre 점령 재도전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1916년 솜 전투에서 기상악화로 앙크레Ancre를 돌파하는데 실패하고 공격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더글러스 헤이그는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했으며 다시 한번 앙크레Ancre를 공격해 돌파하려고 했습니다. 1916년 11월부터 솜 전역에 눈과 비바람이 몰아쳤고 더글러스 헤이그는 군을 준비하며 날이 좋을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1917년 1월 날씨는 여전히 추웠지만 비바람과 눈보라는 멈췄습니다.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이 때 영국원정군에게 공격을 명령했습니다.
- 앙크레Ancre 공세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앙크레Ancre 지역의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하고 세르Serre 마을을 점령한 뒤 더 진격해 바뽐므Bapaume까지 점령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1917년 1월 11일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로베르 니벨 프랑스 장군과 함께 연합군에게 공세 명령을 내렸습니다.
연합군은 사전 포격 이후 안개에 몸을 숨긴 채 무인지대를 건너 독일군 참호를 점령해갔습니다. 연합군 항공대는 덩게르크Dunkirk(됭케르크Dunkerque)에서 날아가 항공지원을 하고 독일군 항공대와 교전을 하면서 연합군 보병을 지원했습니다. 연합군 보병은 파죽지세로 진격해 독일군 참호선을 점령해갔습니다. 독일군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합군이 공격하면 후방 참호로 후퇴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덕분에 1917년 2월 14일 연합군은 독일군 참호선을 거의 다 점령했고 이제 독일군 후방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연합군이 독일군 참호선 대부분을 점령하자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연합군에게 앙크레Ancre 시내로 진격할 것을 명했습니다. 이에 연합군은 사전포격으로 독일군 130번 고지의 철조망선을 파괴하고 2월 17일 진격했습니다. 2월 17일은 먹구름이 끼고 안개가 자욱해 연합군이 공격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연합군은 몸을 가린 채 무인지대로 진격했는데 며칠간 내린 비로 무인지대는 뻘밭이 되어버렸습니다. 때문에 수많은 연합군 병사들이 뻘밭에 몸이 잠겨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허우적댔습니다. 그사이 먹구름과 안개는 걷혔고 독일군은 무인지대에서 허우적대는 연합군에게 야포사격을 가했습니다. 연합군은 움직여보지도 못하고 포화 공격을 받았고 연합군이 몰살당했습니다. 이로 연합군의 앙크레Ancre 시내 진입은 좌절되었고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앙크레Ancre 돌파에 또다시 실패했습니다.
- 독일군의 전략적 후퇴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의 공세를 어떻게든 막았지만 독일군의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1917년 독일제국은 러시아 제국의 브루실로프 공세로 대부분의 병력을 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을 대체해 독일군 병력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전선에 보내야 했고 루마니아가 러시아 제국 편에 서며 동맹국과 전쟁을 시작해 동부전선에 파견해야 하는 병력 수가 늘었습니다. 더불어 이탈리아 전선에서 독일군을 파견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과 함께 이탈리아군과 싸워야 했고 서부전선에서는 베르됭 전투와 솜 전투로 수많은 병력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파울 폰 힌덴부르크 독일군 총참모장은 서부전선에서는 수비하고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을 몰아쳐 러시아 제국 먼저 굴복시킨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파울 폰 힌덴부르크의 명에 따라 독일군 주력부대가 동부전선으로 집중되면서 서부전선을 지키는 병력이 부족해졌습니다. 특히 서부전선의 독일군 참호 돌출부는 연합군의 끊임없는 공격을 당했습니다. 연합군은 독일군 참호 돌출부 양끝을 돌파하면 독일군 참호를 뚫어 독일군 후방으로 깊숙히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수차례 공격을 했고 독일군은 방어하면서 수많은 병력을 잃었습니다. 거기에 돌출부는 방어선 길이를 늘려 늘어난 길이만큼 배치할 독일군 수가 늘었습니다.
그래서 서부전선의 독일군 실질지휘관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왕세자는 서부전선 돌출부를 엎애야 독일군이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왕세자가 보고서를 올린 이후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이 다시 한번 공세를 해 독일군에게 피해를 주자 독일군 참모진은 루프레히트 폰 바이에른 왕세자의 요구를 수용했습니다.
독일군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독일군은 2월 9일부터 솜 전선에서 후퇴했습니다. 이 후퇴는 알베리히Alberich 작전이라 불렸습니다. 독일군은 후퇴를 하면서 철도선과 도로 등을 파괴해 연합군이 쉽게 진격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더불어 물을 오염시키고 마을을 완전히 파괴하며 마을 곳곳에 지뢰와 부비트랩을 설치했습니다. 독일군이 철수하는 동안 솜 부근에 있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영토로 복귀했습니다. 독일군은 1917년 2월 9일부터 3월 20일까지 후퇴했고 독일군은 이 작전을 들키지 않게 최전방 방어선에 일부 병력을 배치하며 연합군과 대치했습니다. 독일군의 후퇴 사실을 몰랐던 연합군은 공세를 하며 독일군 최전방 일부를 점령했습니다. 허나 최전방의 독일군은 저항하지 않고 도망치며 독일군 후퇴행렬에 참여했습니다.
- 지크프리트 선
한편 서부전선 후방의 독일군은 오래전부터 새로운 참호를 만들었습니다. 후방의 독일군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 총참모장의 명에 따라 1916년 9월부터 아라스Arras에서 라포Lafaux에 이르는 참호선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새 참호선의 명칭은 지크프리트 선이었지만 병사들은 그 참호선을 힌덴부르크 선이라 불렀습니다. 지크부르크 선은 계획적으로 참호와 벙커 요새를 만들었고 선 앞에 지뢰를 매설하고 기관총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솜 전선에 배치된 독일군은 1917년 2월부터 후퇴해 지크부르트 선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로서 독일군은 돌출부를 없애 방어선 길이를 줄였고 적은 병력으로 더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새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연합군은 독일군 후퇴사실을 여태 몰랐다 3월이 되서야 독일군이 후방으로 후퇴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뒤늦게 사실을 안 연합군은 재빠르게 독일군 뒤를 쫒았으나 독일군은 지크부르트 선에서 방어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연합군은 더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새 방어선에 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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