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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덴부르크5

[동부전선: 동프로이센 공세] 독일제국의 고향을 두고 벌인 혈전 프로이센의 발흥지 오스트프로이센Ostpreußen(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는 프로이센 공국이 발흥한 곳이었습니다. 1256년 폴란드 튜튼 기사단에 의해 세워진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성은 근대 유럽 당시 독일의 한자Hansa 동맹에 가입한 도시였습니다. 한자 동맹의 일원으로 독일의 정체성을 가진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성은 1525년 호엔촐레른 가문이 프로이센 공국을 선포하고 수도로 삼았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에서 탄생한 프로이센 공국은 1618년 브란덴부르크Brandenbrug 변경백국과 동군 연합을 해 프로이센 왕국으로 성장했고 이후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과 7년 전쟁에서 게르만 강대국 오스트리아 제국을 굴복시.. 2022. 2. 15.
[서부전선: 힌덴부르크선] 독일군의 전략적 후퇴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의 앙크레Ancre 점령 재도전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1916년 솜 전투에서 기상악화로 앙크레Ancre를 돌파하는데 실패하고 공격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더글러스 헤이그는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했으며 다시 한번 앙크레Ancre를 공격해 돌파하려고 했습니다. 1916년 11월부터 솜 전역에 눈과 비바람이 몰아쳤고 더글러스 헤이그는 군을 준비하며 날이 좋을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1917년 1월 날씨는 여전히 추웠지만 비바람과 눈보라는 멈췄습니다.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이 때 영국원정군에게 공격을 명령했습니다. 앙크레Ancre 공세 더글러스 헤이그 총사령관은 앙크레Ancre 지역의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하고 세르Serre 마을을 점령한 뒤 더 진격해 바뽐므Bapaume까지 점.. 2022. 2. 3.
[서부전선: 베르됭 전투 3편] 참혹한 소모전의 결말 사방에서 시작된 독일공격 6월 말 공세를 끝내고 베르됭 요새 점령을 준비하던 독일군에게 또다른 변수가 생겼습니다. 연합군이 독일을 양쪽에서 대대적으로 공격한 것었습니다. 동부전선의 러시아군은 6월 말 브루실로프 공세로 독일제국의 우방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을 멸망직전으로 만들어 독일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지원해야 했습니다. 또 서부전선에서는 1916년 7월 1일 솜 방면에서 영국원정군이 대규모 부대를 이끌고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해 전과는 차원이 다른 공세를 펼쳤습니다. 이에 독일군은 황급히 솜므 방면으로 병력을 파견해 솜므 참호선을 지켰습니다. 상당수의 독일군이 솜므 전선으로 파견가며 베르됭 요새 전선에 파견된 독일군 병력은 부족해졌습니다. 6월 말부터 상황은 독일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그래.. 2022. 2. 1.
[서부전선: 베르됭 전투 1편] 프랑스군을 격멸하라 어떻게 전쟁을 끝낼 것인가? 1914년 시작된 전쟁은 어느덧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이 1년 이내에 종식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서부전선에 참호선이 생기고 동부전선에 러시아군이 광활한 러시아 평원에서 끝없이 도망가며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연합국과 동맹국은 지쳤습니다. 특히 프랑스를 굴복시키려고 했던 독일제국은 슐리펜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전쟁이 장기화되자 더 초조해졌습니다. 그래서 독일제국의 총참모장 에리히 폰 팔켄하인은 1916년에라도 프랑스를 완전히 꺾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에리히 폰 팔켄하인 총참모장은 1914년부터 1915년까지의 전투를 복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역대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독일군보다 몇 배 더 많은 피해를 입음에도 별다른 성과.. 2022. 2. 1.
[서부전선: 제1차 이프르 전투] 마지막 돌파구 제1차 이프르Ypres 전투 독일군에게 남은 돌파구는 아프르Ypres 뿐이었습니다. 독일군은 마지막 돌파구를 반드시 뚫어야 했습니다. 이곳마저 뚫지 못한다면 독일군이 우회기동할 공간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연합군도 이를 잘 알았고 이프르 일대는 독일군과 연합군의 대격돌 장소가 되었습니다. 독일군은 전쟁 시작 후 현역군과 예비군을 모두 동원해 전쟁터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많은 현역군과 예비군을 상실하며 충분한 훈련을 받은 양질의 병사 상당수를 잃었습니다. 새로 충원한 병사들은 신입 병사들로 전장 경험이 풍부하지 않았습니다. 연합군 역시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모병제였던 영국원정대는 수많은 병력을 잃고 피로도가 누적되었으며 프랑스군도 많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양측은 좋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2022.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