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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종료/그들의 목표

[그들의 목표: 세르비아 왕국] 범세르비아주의

by 롱카이. 2022. 11. 14.
  • 발칸반도 서부에 세울 남슬라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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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 상황: 발칸반도 편-1]오스만 제국의 후퇴와 발칸의 새질서

중세 발칸반도 중세의 발칸반도에는 여러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동로마인 비잔티움제국과 불가리아 제국, 세르비아 왕국, 헝가리 왕국, 왈라키아 공국 등 여러 국가들이 존재했습니다. 발칸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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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슬라브
남슬라브

예로부터 발칸반도에는 남슬라브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남하한 남슬라브인들은 비잔티움 제국과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협력하며 발칸반도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발칸반도의 남슬라브인들은 발칸반도 동부에 불가리아 제국을, 서부에 세르비아 제국을 세우며 남슬라브 국가를 건설해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슬라브인들은 불가르인과 세르브인은 갈라졌고 서로를 다른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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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 상황: 발칸반도 편-2]유럽의 화약고; 발칸전쟁

베를린 조약 이후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전쟁은 러시아 제국의 승리로 끝났고 발칸반도의 여러 국가들이 자치권 혹은 독립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영토가 산스테파노 조약 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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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발칸전쟁으로 세르비아 왕국이 얻으려 한 영토
제1차 발칸전쟁으로 세르비아 왕국이 얻으려고 한 영토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세르비아 왕국은 남슬라브 서부영역을 담당하는 국가치고는 너무 작은 영토를 보유했습니다. 그래서 세르비아 왕국은 1912년 제1차 발칸전쟁으로 서부에 있는 남슬라브인들의 영토를 획득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세르비아 왕국의 팽창을 견제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안지대의 무슬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알바니아 공국을 독립시켜 세르비아 왕국을 내륙국으로 만들었습니다.


  • 범세르비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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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전선: 전쟁 준비] 세르비아 왕국의 야망

세르비아 공국 18세기 오스만 제국은 발칸반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발칸반도의 민족들을 2등 신민으로 규정하고 직접통치했습니다. 오스만 치하의 발칸 슬라브인들은 오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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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브인과 기타 서부 남슬라브인 영역
세르브인과 기타 서부 남슬라브인 영역

제1차 발칸전쟁 이후 세르비아 왕국은 해안지대를 상실했지만 세르비아에게는 명분이 없었습니다. 발칸반도 서부에 사는 남슬라브인들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운 세르비아 왕국은 무슬림이 가득한 알바니아 지역을 왜 점령했냐는 질문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르비아 왕국은 알바니아 공국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세르비아 왕국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르비아 왕국은 발칸반도 서부에 사는 남슬라브인들을 규합한다는 명분을 새로 내세웠습니다. 여기서 서부 남슬라브인들은 세르브인 뿐만 아니라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인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세르비아
대세르비아

세르비아 왕국의 목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소속의 크로아티아 왕국을 합병해 바닷길을 뚫는 것이었습니다. 세르비아 왕국은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차지해 대세르비아Велика Србија를 실현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영토를 대부분 수복한 상황으로 세르비아 왕국 정부는 독립 직후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에 흥분했습니다.


  • 1915년 런던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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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선: 이탈리아 왕국의 연합국 가담] 이탈리아 왕국의 선택

이탈리아 통일전쟁 수세기 분열된 이탈리아는 유럽의 강대국인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두 강대국이 충돌하는 전장이 되어 국토가 황폐화 되었습니다. 이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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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런던조약
1915년 런던조약

1914년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세르비아 왕국은 예상 외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공을 잘 막아냈습니다. 1915년에도 세르비아 왕국은 침공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막아내며 자리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세르비아 왕국이 선전하는 것을 보고 연합국에 가담할 의사를 보였습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동맹국을 배신한 이탈리아 왕국을 환영하며 1915년 4월 26일 런던조약을 열어 이탈리아 왕국에게 선물을 주려고 했습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세르비아 왕국 대표를 불러 이탈리아 왕국이 원하는 달마티아Dalmazia를 이탈리아 왕국에게 줄 것을 강요했습니다. 대신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공국 북부 영토를 세르비아 왕국에게 주는 선물을 했습니다.

대세르비아 이상과 런던조약 영토
대세르비아 이상과 런던조약 영토

세르비아 왕국은 황당했지만 연합국 강대국들의 요구이며 달마티아Dalmazia 일부를 잃어도 해안가를 확보했기 때문에 별다른 저항없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불가리아 차르국도 연합국으로 끌어들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북마케도니아Северна Македонија 지역을 원하는 불가리아 차르국의 요구에 따라 세르비아 왕국에게 북마케도니아Северна Македонија 지역을 불가리아 차르국에게 할양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세르비아 왕국은 이것만은 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힘이 없는 약소국에 전쟁물자를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에게 의존했기 때문에 이도 수용했습니다. 하지만 세르비아 왕국은 런던조약 이후로도 불가리아 차르국에게 절대 영토를 주지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불가리아 차르국이 동맹국을 선택하게 만들었습니다.


  • 카라조르제비치 왕조
카라조르제비치 왕조 문장
카라조르제비치 왕조 문장

세르비아 왕국은 대세르비아Велика Србија를 실현하려고 했지만 현실적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같은 세르브인, 크로아트인, 슬로벤인, 보스니아인은 같은 서발칸반도 남슬라브인이지만 오랜 기간 제국의 분할 상태에 놓여 정체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말이 그래도 통했지만 종교가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치하의 남슬라브인들은 카이저Kaiser 프란츠 요제프 1세를 경외했습니다. 이에 세르비아 왕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본따 카라조르제비치 왕조 휘하에 남슬라브인이 모이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카라조르제비치 왕조는 왕실로서 모범을 보이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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