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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전쟁으로: 오스트리아 병합] 게르만 통일 독일국과 오스트리아 연방의 갈등 게르만 민족주의자들의 오랜 논쟁은 같은 게르만 국가인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통합해야하는가였습니다. 1866년에는 그 해답으로 통합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들고 일어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하고 북독일연방과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양강분열했습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바이마르 공화국과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힘을 합쳐 다시 강성한 게르만국가로 성장하기를 원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국명을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으로 정한 이유는 위의 이유였습니다. 허나 승전국들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바이마르 공화국과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 통합을 금지했습니다. 그렇게 둘은 통일하지 못했고 그 사이 두 국가에 새 독재자가 등장했습니다.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 2022. 12. 15.
[더 큰 전쟁으로: 중일전쟁] 전쟁의 수렁 엔화블록 1929년 대공황 이후 일본제국은 대영제국의 파운드화 블록 경제 모델을 받아들여 엔화 블록 경제를 구축해 대공황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일본제국은 1931년 만주사변으로 괴뢰국인 만주국을 건국하고 일본제국 식민지와 만주국을 잇는 엔화 블록 경제를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제국 식민지는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만주국은 철과 자원이 풍부해 대규모 공업지대를 만들어 공업생산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지만 이를 소비할 시장이 부족했습니다. 일본제국 식민지와 만주국은 일본제국 본토 경제를 회복시킬만한 시장이 되지 못했고 일본제국 본토의 경제는 별다른 성장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제국은 거대한 시장이 필요했고 일본제국에게 적합한 시장은 막대한 인구와 자원을 보유한 중화민국이었습니다. 일본제국은 오.. 2022. 12. 15.
[더 큰 전쟁으로: 대숙청]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숙청 소련 경제발전의 이면 1928년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은 1928년 제1차 국민경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소련의 경제개발을 주도했습니다. 스탈린은 관료의 규모를 키워 각 공장과 농장을 관리하는 관청과 관리들을 생성했고 수많은 공산당원들이 소련 중앙정부의 명을 받아 지방을 지도하는 관리가 되었습니다.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은 빠른 경제발전 성과를 원했고 지방끼리 성과 경쟁을 붙였습니다. 이에 지방 관료들의 일부는 성과를 조작해 상부에 보고하고 혜택을 받아갔습니다. 1929년 최대 정적인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를 국외로 추방하고 소련의 정권을 독식한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은 국민경제 5개년 계획의 진행상황을 점검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소련 지방관료들의 대부분이 근무태만 상태에 빠져.. 2022. 12. 15.
[더 큰 전쟁으로: 스페인 내전] 더 큰 전쟁의 전초전 알폰소 13세의 퇴위 1886년 5월 17일 태어나자마자 즉위한 알폰소 13세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국 참전이라는 여론을 잠재우고 중립국을 고수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입헌군주제에 불만을 품고 사람들이 대전쟁에 정신이 쏠린 틈을 타 전제군주제 부활을 꿈꿨습니다. 그는 대전쟁 동안 의회의 힘을 약화시키고 전제군주제로의 회귀를 꿈꿨지만 1921년 리프 전쟁에서 패배해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국왕의 위신을 지켜주었기 떄문에 망신을 면했습니다. 한숨을 돌린 그는 스페인 의회를 해산시켰고 스페인 국민들은 이에 집단반발했습니다. 스페인 사회주의자들이 반군주제를 외쳤고 카탈루냐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1929년 대.. 2022. 12. 14.
[더 큰 전쟁으로: 라인란트 재무장] 전쟁 준비 베르사유 조약 파기 1920년 1월 20일 발효된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의 군비를 제한해 강력한 군대를 형성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리고 무력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과 벨기에 왕국에게 루르 침공을 허용해줘야 했습니다. 이는 독일인에게 수치심을 주었고 독일인은 다시 군사력을 부활해 적의 침공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그런 민중의 마음을 꿰뚫었고 1934년 총통이 되어 대독일국을 이끌었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1935년 3월 16일 독일 재군비 선언을 일방적으로 선언하며 독일국 재무장을 추진했습니다. 이는 아돌프 히틀러의 도박이었지만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베르사유 조약이 가혹한 조약이어서 대독일국이 반발한다고 생각했고 폴란드 제2공화국이 대독일국과 전쟁을 하려고 .. 2022. 12. 14.
[더 큰 전쟁으로: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이탈리아의 도박 독일국의 재무장 아돌프 히틀러는 위기에 빠진 독일국의 산업생산력을 극대화시키고 소련과 비밀협정을 맺어 소련의 공장에 독일국 무기를 생산한 후 이를 독일국 본국으로 가져가며 독일국을 다시 무장시켰습니다.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다시 군대를 가진 독일국을 견제하며 이탈리아 왕국과 함께 독일국을 견제할 것을 중용했습니다. 이에 베니토 무솔리니 역시 환영하며 대영제국-프랑스 제3공화국-이탈리아 왕국의 대독일 스트레사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베니토 무솔리니의 속마음은 독일국 견제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 곳은 에티오피아 제국으로 베니토 무솔리니는 19세기 이탈리아 왕국이 에티오피아 제국을 점령하는 데 실패한 치욕을 되갚고 식민지를 확장하려는 꿈에 젖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영제국, 프랑스 제.. 2022.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