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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전쟁으로: 이라크 하심 왕국] 이라크 문제 시발점 아랍 영웅 파이샬 1세 무함마드가 이슬람 제국을 건설한 직후 아랍 민족은 수세기 동안 부족 단위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아랍인은 기독교를 믿었고 어떤 아랍인은 이슬람을 믿었습니다. 더 세분화하면 로마 가톨릭 신자, 정교회 신자, 콥트교 신자, 수니파, 시아파 등으로 나뉘었고 심지어 일부는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랍 민족은 애초에 아라비아ٱلسُّعُوْدِيَّة 반도와 마스르مَصْر(이집트)에 살던 사람들을 묶어 표현한 민족으로 수많은 부족들을 하나로 싸잡아 편리하게 아랍인이라고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랍 민족주의는 현실적으로 조금 무리가 있는 민족주의 개념이었습니다. 이는 이라크 왕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아랍 민족주의자 파이살 1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랍인이.. 2022. 12. 12.
[더 큰 전쟁으로: 웨스트민스터 헌장] 자치령의 새로운 정의 1926년 벨푸어 선언 대영제국의 정치인 중 친유대 인사였던 아서 제임스 벨푸어는 유대인 국가 건립을 꾸준히 주장했습니다. 다른 정치인들이 대영제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아랍인 영토로 주장했을 때 아서 제임스 벨푸어는 끊임없이 대영제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자치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여러 유력한 유대인 가문에 도움을 청했고 그들의 자본력을 앞세워 반대인사들의 의견을 묵살하며 유대인 국가 건립을 준비했습니다. 1926년 11월 15일 아서 제임스 벨푸어는 제국의회에서 벨푸어 선언을 선포하며 대영제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자치령으로 선포했습니다. 허나 대영제국의 대영제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지나치게 온건해 다른 나라들의 의문을 샀습니다. 아서 .. 2022. 12. 12.
[더 큰 전쟁으로: 버마 분리운동] 버마는 인도와 다르다 인도제국 미얀마 역사상 최전성기를 달렸던 꼰바웅 왕조는 팽창주의 정책 때문에 인도제국과 자주 충돌했습니다. 19세기 대영제국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국가들을 정복하며 인도제국을 건설했고 꼰바웅 왕조도 눈여겨 보았습니다. 대영제국 동인도회사는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허약함을 확인하자 청나라를 포위하려고 꼰바웅 왕조를 공격해 인도제국에 편입시켰습니다. 대영제국 동인도회사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낮은 남부를 확보해 영국군 병력을 바로 윈난성元南省으로 파병할 수 있는 기지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꼰바웅 왕조의 신민들은 인도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인도제국에 속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자치권이 주어진 인도제국 일부 지역과 달리 버마는 전체가 직접 지배를 받으며 수탈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 2022. 12. 12.
[더 큰 전쟁으로: 아르헨티나 위기] 충격과 반등 남아메리카 패권국 아르헨티나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 공화국은 자유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삼아 유럽과 미국으로 밀, 가공육, 양모, 깃털, 가죽, 유제품을 판매하며 높은 무역 흑자를 얻었습니다. 또한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드넓은 평원을 가진 아르헨티나 공화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농업-목축 국가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독일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등 유럽인들이 아르헨티나 공화국으로 이주해 인재를 유입했습니다. 그 덕분에 아르헨티나 공화국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경제성장률이 높은 국가가 되었고 남아메리카 패권국 지위에 도전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공화국은 국가재정의 상당수를 군사력에 투자해 아르헨티나군을 양성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공화국은 유럽에서 무기를 .. 2022. 12. 9.
[더 큰 전쟁으로: 남아메리카 경제 충격] 대충격 1차 산업에 머문 남아메리카 남아메리카는 18세기에 독립한 후로도 계속 플랜테이션 농업과 천연자원을 수출하는 국가 산업을 유지했습니다. 남아메리카가 식민지 지배를 받는 동안 산업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독립 후 가진 산업 역량은 농업과 광산업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중공업을 육성하려고 해도 유럽과 미국은 남아메리카가 2차 산업을 가지지 못하게 방해했습니다. 유럽은 당시 최고 기술이자 국가 안보 기술이었던 2차 산업을 함부로 남아메리카에 전수하지 않았고 미국은 먼로 독트린에 따라 남아메리카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국력상승을 방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남아메리카는 2차 산업 기술을 전수받지 못했고 개발하려는 시도도 유럽과 미국의 훼방으로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남아메리카 국가들.. 2022. 12. 9.
[더 큰 전쟁으로: 이스타두 노부] 새로운 나라 국가독재Ditadura Nacional 포르투갈 제1공화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지만 승전 후 딱히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포르투갈 제1공화국 정계는 여전히 분열되어 서로 공격했을 뿐 화합과 단결을 하지 않았고 포르투갈 제1공화국 혼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갈 민중은 끝나지 않는 혼란에 지쳤습니다. 이에 1925년 세차례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1926년 5월 28일 마누엘 구미즈 다 쿠스타 육군장교가 군사쿠데타에 성공하며 포르투갈 제1공화국 총리와 의회를 체포했습니다. 그 후 5월 30일 비르나르디누 마샤두 대통령이 후세 멘디스 커비사더스 해군 장교를 총리에 임명하면서 포르투갈 국가독재 시대가 열렸습니다. 포르투갈 국가독재 시대 동안 호세 메디스 커비사더스,.. 2022.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