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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종료/그들의 목표

[그들의 목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2편] 민족을 품은 제국

by 롱카이. 2022. 11. 9.
  • 카를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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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전선:  브루실로프 공세 1편] 러시아군의 대공세

갈리폴리 상륙작전 실패와 막힌 보급로 러시아 제국은 1915년부터 만성적인 물자부족에 시달렸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충분한 산업화를 이룩하지 못해 전쟁 시 필요한 물자들을 충분히 생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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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전선: 브루실로프 공세 2편] 피로 얻어낸 성과

바라노비치Бара́новичи 공세 러시아군이 브루실로프 공세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 깊숙이 침투하는 동안 러시아 북부군은 독일군이 점령한 브레스트Брест와 쿠를란트Курзе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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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실로프 공세로 갈리치아를 다시 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브루실로프 공세로 갈리치아를 다시 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엄청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그 역량을 피지 못했습니다. 이론에 강하지만 실전에 약한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는 잘못된 세부전략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을 패배로 몰아넣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 왕국을 쉽게 손에 넣지 못했고 오히려 러시아 제국의 공격에 갈리치아Galizien을 상실해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했습니다. 1916년 세르비아 왕국을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이탈리아 왕국의 끈질긴 소모전과 러시아 제국의 브루실로프 공세로 붕괴 위기에 당면했습니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서거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서거

그리고 그 상황에서 1916년 11월 21일 카이저Kaiser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서거했습니다. 프란츠 요제프 1세 서거 직후 카를 1세가 새 카이저Kaiser로 등극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신민들은 새 카이저Kaiser가 강인한 프란츠 요제프 1세처럼 제국을 잘 이끌 수 있을 지 의문을 표했습니다. 다행히 카이저Kaiser 카를 1세는 할아버지를 닮아 제국을 유능하게 통치했습니다. 그는 신민들을 다독이고 제국의 미래를 그렸습니다.


  • 평화를 사랑한 카를 1세
카이저 카를 1세
카이저 카를 1세

카이저Kaiser 카를 1세는 전쟁을 빨리 끝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 확장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친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가들을 확보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폴란드 섭정왕국을 건립할 때 폴란드 섭정왕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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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전선: 폴란드 왕국] 폴란드 민족 국가의 불완전한 탄생

폴란드 의용군의 활약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의 압제를 받던 폴란드인들은 러시아령 폴란드Polska 땅에 폴란드인 민족국가 건국을 희망해씁니다. 그래서 1914년 폴란드인들은 스스로 폴란드 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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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섭정왕국
폴란드 섭정왕국

때문에 그는 게르만 팽창을 추구한 독일제국과 갈등을 벌였습니다. 독일제국은 전쟁 중이니 우선 폴란드 섭정왕국을 건립한 후 러시아 제국이 항복하면 러시아 땅에 폴란드를 건국하고 폴란드 섭정왕국은 독일제국이 흡수하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독일제국은 폴란드 섭정의회를 독일제국의 꼭두각시로 만들려 했습니다. 카를 1세는 이를 반대했지만 1916년 연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미 독일제국의 간접 지배 하에 놓였습니다. 독일제국 장성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지 않게 꽉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이저Kaiser 카를 1세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 카를 1세가 그린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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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선: 카포레토 전투] 이탈리아 왕국의 대위기

연합국의 합동공세 1917년 초 서부 전선에서 니벨공세가 대실패로 끝난 후 페르디낭트 포슈가 프랑스군 총참모장으로 등극했습니다. 페르디낭트 포슈 프랑스군 총참모장은 1917년 루이지 카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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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포레토 전투
카포레토 전투

1917년 10월 이후 러시아 공화국은 무너지고 내전에 휩싸였으며 이탈리아 왕국은 카포레토 전투의 대패로 후방으로 물러났습니다. 연합국 중 러시아와 이탈리아가 전선에서 후퇴하자 서부전선만 남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카를 1세는 동맹국의 승리를 점쳤고 전쟁 후의 유럽을 구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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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전선: 세르비아 분할] 동맹국 치하의 세르비아

세르비아 분할 1915년 12월 말 세르비아 공세가 성공할 기미를 보이자 동맹국은 세르비아를 분할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습니다.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불가리아 차르국은 19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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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세르비아 왕국은 이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스니아 현에 속해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1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몬테네그로와 알바니아를 점령해 군정을 실시했습니다. 카를 1세는 전쟁이 끝나면 군정을 멈추고 이들을 독립시키되 친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카를 1세가 구상한 전후 판도
카를 1세가 구상한 전후 판도

카이저Kaiser 카를 1세는 영토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르비아현, 몬테네그로 현을 현으로 두거나 독립국으로 독립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알바니아는 알바니아를 욕심내는 이탈리아 왕국에게 화해의 의미로 공동 통치하는 구역으로 만들 구상을 했습니다. 물론 삼국동맹을 배신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공격한 이탈리아 왕국의 베네토Veneto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로 편입시키는 벌을 내리려고 했습니다. 그 외에 루마니아 왕국과 폴란드 섭정왕국은 독일제국과 함께 간접지배하려고 했습니다.

카를 1세의 대오스트리아 합중국(상상도)
카를 1세의 대오스트리아 합중국(상상도)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행정제도 개혁을 펼쳐 여러 민족이 각자의 구역을 보유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카를 1세는 정확한 행정구역을 구상하지 않았지만 사라예보 사건으로 사망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대오스트리아 합중국을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통치 기간 동안 민족에 대한 조사를 다시 했던 것을 보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아닌 합중국으로 만들려고 한 의도가 있어보입니다.


  • 정체성을 잃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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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전선: 카이저 카를 1세] 비운의 카이저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카를 1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카이저 프란츠 1세는 1914년 대전쟁이 터질 때 고령의 나이였습니다. 그는 카이저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전제군주제의 카이저였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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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2세를 만나는 카를 1세
빌헬름 2세를 만나는 카를 1세

하지만 불행히도 카이저Kaiser 카를 1세는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1917년 말 제국의 신민들은 전쟁에 지쳤고 제국을 떠나 민족국가 건립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다민족 제국의 정체성을 가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7년 이미 독일제국의 지배 하에 놓여 게르만 민족국가로 변해갔고 타민족은 제국이 민족국가로 변한다는 두려움을 품었습니다. 이에 남슬라브인들은 민족국가 건립을 준비했고 머저르 민족은 제국을 배신하고 자국 민족 건립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카를 1세 역시 독일제국 장성 앞에서 꼼짝 못했습니다. 다민족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917년 게르만 국가로 변하며 그 정체성을 스스로 잃어버렸고 이는 제국 해체를 촉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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