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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이제르 강 전투] 벨기에 최후의 방어선 벼랑 끝으로 몰린 벨기에 벨기에군은 안트베르펜Antwerp마저 독일군에게 빼앗기고 북해해안으로 후퇴했습니다. 국왕 알베르1세와 벨기에 정부는 오스텐트Ostend에 사령부를 세우고 벨기에의 최후를 함께 맞이할 각오를 다졌습니다. 영국원정대와 프랑스 제3공화국 군대는 벨기에 중부에서 독일군에게 격퇴당하고 프랑스 본토를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벨기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이들의 분전에도 독일군은 벨기에 방면으로 계속 진격하고 있었고 벨기에는 수세에 몰렸습니다. 더군더나 프랑스 영토에서 참호경쟁이 시작되면서 독일군은 벨기에로 우회해 프랑스에 있는 연합군 참호를 우회해야 했습니다. 연합군 역시 독일군의 의도를 잘 알았고 연합군도 독일군의 우회공격을 막고 연합군이 우회공격해 독일군을 프랑스에서 몰아내야 했습니다.. 2022. 1. 21.
[서부전선: 안트베르펜 공방전] 안트베르펜을 탈출하라 최후의 벨기에 중부 요새 안트베르펜Antwep 독일군은 벨기에 남부를 장악하고 북진해 브뤼셀Bruxelles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제1군과 제2군이 안전하게 벨기에를 통과할 수 있도록 벨기에 중부를 빠르게 장악해갔습니다. 독일군이 벨기에 중부를 점령해가는 도중 한 도시만을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안트베르펜Antwerp이었습니다. 안트베르펜은 요새로 둘러싸인 요새도시로 안트베르펜을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대규모 포격과 공세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당장 프랑스 파리로 진격하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안트베르펜 도시를 포위하는 선에서 그치고 프랑스 파리 공격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이 마른 전투에서 후퇴하면서 단기전은 물건너갔습니다. 때문에 독일은 독일과 프랑스 사이 길목인 벨기에를 정리할 필요가.. 2022. 1. 21.
[서부전선: 참호선 확장] 프랑스 땅에 놓여진 참호선 바다로의 경주 엔Aisne 강 부근 전쟁터에서 참호 경쟁이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양측은 적의 우회기동을 허용할 수 없었고 우회기동을 막기 위해 빈 북서쪽으로 계속해서 참호를 파갔습니다. 물론 양측은 서로 참호를 파간다는 사실을 잘 알았고 적군이 참호를 파기 전에 빨리 우회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우회 공격은 참호가 미처 다 파지지 않은 북서쪽으로 행해졌고 적의 우회공격을 막아내며 참호를 팠습니다. 참호가 파지면 그 북서쪽을 또 공격하고 또 막아내며 참호선은 점차 길어져갔고 승부를 내지 못한 채 바다까지 참호가 연결되었습니다. 1차전 피카르디Picardy 전투(9월 22일-26일) 1914년 9월 18일 프랑스군 참호건설이 중단되었습니다. 조프르 총참모장은 프랑스군을 새로 편제했습니다. 그는 지친 병사들 대.. 2022. 1. 20.
[서부전선: 제1차 엔 강 전투] 바다로의 경주 독일군 총참모장이 된 에리히 폰 팔켄하인 전쟁이 시작되자 독일제국의 카이저 빌헬름 2세는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를 독일 총참모장으로 임명해 그에게 전두지휘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몰트케 총참모장은 서부전선 전황을 지나치게 낙관하며 안일한 태도를 보였고 제 1차 마른 전투 패배의 원흉이 되었습니다. 카이저 빌헬름 2세는 무능한 몰트케 총참모장을 해임하고 자신이 신뢰하던 에리히 폰 팔켄하인을 독일제국 서부전선을 지휘할 총참모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총참모장이 된 팔켄하인은 방어적 자세로 적을 섬멸하려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는 후퇴한 독일군에게 참호를 파고 지역을 수비하며 연합군을 섬멸하고 공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독일군이 프랑스 영토 진입에 성공했으니 수비적 자세를 유지하다 기회가 오면 공격해.. 2022. 1. 20.
[서부전선: 제1차 마른강 전투] 마른강의 기적 길어진 독일군 보급선 독일군은 벨기에에서 연합군을 물리치고 프랑스로 쾌속 진격했습니다. 연합군은 벨기에에서 대패하고 파리Paris 부근으로 후퇴해 독일군은 벨기에-프랑스 국경에서 파리Paris까지 그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연합군은 후퇴하는 와중 파리Paris로 후퇴하면서 철도선과 도로 등 모든 교통로를 파괴하고 다리를 파괴해 독일군이 빠르게 진격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특히 연합군은 벨기에-프랑스 국경에서 파리에 이르는 모든 철도선을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했습니다. 교통로의 파괴는 진군하는 독일군 일선부대에게도 장애물이었지만 후방 보급부대에게는 매우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일선부대에게 식량과 무기를 보급해야 하는 독일군 보급부대는 철도를 이용한 빠른 수송에 의존했습니다. 철.. 2022. 1. 20.
[서부전선: 파리의 위기] 함락 직전이었던 파리 계획대로 되지 않는 슐리펜 계획 독일군 우익부대는 슐리폔 계획에 따라 프랑스 북부를 크게 우회하며 진격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익부대는 걸어서 프랑스 파리를 크게 돌아 한달 즈음에 파리에 도착해야 했고 이는 불가능한 작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벨기에가 항전해서 독일군은 벨기에에서 많은 시간을 빼앗겼고 독일군도 전투에 지쳤습니다. 더욱이 벨기에 브뤼셀Bruxelles를 점령했음에도 벨기에는 해안가 근처에 모여 끝까지 항전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벨기에에서 독일군을 막으려던 연합군이 패배해 파리까지 후퇴하면서 중간 방해물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독일군은 빠른 속도로 행군진격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군은 걸어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독일군이 빠르게 진격하기 위해서는 철도를 이용한 진격이 가장 좋지만 프랑스군이.. 2022. 1. 20.